단편야설

(경험담 야설) 호주에서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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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밍키넷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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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하기 전에 호주에 어학연수를 갔다.

그게 벌써 11년 전의 일인 것 같다.


그 당시만 해도 어학연수를 가는 대학생들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부모님 잘 만난 덕에 지방에서 살았지만,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날 수 있었다.


처음에 호주에 도착해서는 신기한 것 천지였다.

제대해서 머리도 기르기 전에 신세계에 도착하니 완전히 내 세상이었다.


난 처음에 도착해서 포르노영화관도 가 보았고 스트립쇼를 하는 곳도 가 보았고 섹스숍에도 가 보았다.

그러나 처음 갈 때는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차츰 지나자 그런 것들이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2~3개월쯤 지나자 학교생활도 점차 적응되어 갔다.

3개월이 지나자 1t Erm 이 끝났고 난 고급반에 편성되었다.


그곳에서 난 한 일본 여학생과 클래스메이트가 되었다.

그녀는 일본 여학생들과 달리 키가 크고 하얀 피부를 지닌 미인이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Junior College(전문대)를 졸업하고 어학연수를 와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끼꼬였다.


그녀는 수업 시간에 내 옆에 앉았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나에게 물어보곤 했다.

우린 곧 친해졌고 주말에 시드니 근교의 블루마운틴이나 원더랜드 등을 같이 놀러 다녔다.


어느 날 그녀와 같이 밤늦게 시드니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우린 불량배를 만났다.

불량배가 술병을 깨고 우리를 위협하며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그녀는 무서워서 내 옆에서 벌벌 떨었다.

난 그 당시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어 몸이 펄펄 날 정도로 건강했고 태권도를 10년 정도 해서 공인 3단이었다.


난 나의 주특기인 앞돌려차기를 시도했다.

발끝으로 병을 쥐고 있던 손을 차서 병을 바닥에 떨어지게 한 뒤에 바로 뒤차기를 시도했다.


그 덩치 큰 호주 놈의 배가 내 발 뒤꿈치에 뭉클하게 느낌이 왔다.

배를 움켜잡고 있는 그놈을 다시 뒤후리기로 얼굴을 가격하자 바로 다운이 되어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로 그녀는 나와 더욱 친하게 되었고 날 믿게 되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서 파티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나와 그녀의 친구들을 초대했다.

호주에서는 파티에 샴페인이나 포도주, 음료수, 꽃 등을 가져가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였다.


난 그녀를 위해 샴페인과 꽃을 준비해서 그녀의 집에 갔다.

참고로 호주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술을 팔지 않는다.

Liquor Barn이라는 곳에서만 주류를 판매하며 미성년자는 절대로 술을 살 수 없다.

판매 시간도 오후 5시가 지나면 문을 닫기 때문에 술을 먹으려면 미리 사두어야 한다.


집에는 이미 그녀의 친구들이 와 있었고 우린 저녁 식사를 하고 술을 한 잔씩 하면서 춤도 추고 놀았다.

난 술이 약해서 포도주를 몇 잔 마시자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소파에 앉아서 졸고 있자 아끼꼬가 나보고 방에 있는 침대에 가서 자라고 날 데려갔다.


방에 있는 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잤을 때 목이 말라서 눈을 떴다.

어둠에 익숙해졌을 때 내 곁에 누가 누워 있는 것을 알았다.


아끼꼬 그녀가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자 그녀도 깨어났다.


파티에 왔던 손님들은 다 갔는지 거실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물을 가져왔다.

물을 먹고 우리 둘 사이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국 여인들의 얼굴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녀는 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만졌다.

내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내 입술에 포개졌다.

내 입술 사이로 들어오는 그녀의 부드러운 혀의 감촉이 너무나 달콤하게 느껴졌다.


서로의 혀가 교차하자 내 바지 지퍼 속의 물건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눕히고 부드럽게 키스를 계속하며 그녀의 옷 속을 더듬어 브래지어 속으로 손을 넣어서 풍만한 유방을 더듬었다.


내 손가락이 그녀의 유두를 건드리자 가냘픈 신음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나의 손을 뒤로 돌려 그녀의 브래지어 훅을 풀었다.

그리고 윗옷을 벗기자 그녀의 뽀얀 가슴이 드러났다.

보기보다 상당히 글래머였다.


가슴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주물렀다.

그녀는 내가 하기 좋게 손을 위쪽으로 했다.


한 손으로 꼭지를 만지작거리며 혀끝으로 살짝 가슴 위를 핥았다.

그녀의 몸이 움찔하며 반응했다.


꼭지를 빨아주자 손으로 내 머리를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내 혀는 다시 위로 올라와 그녀의 목을 빨았다.

내 혀가 그녀의 귓속으로 들어가자 몸을 움츠리며 비비 꼬았다.

내 혀는 가슴을 지나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와서 배꼽을 핥았다.


그녀의 반바지를 벗겼다.

팬티도 벗기자 뽀얀 허벅지가 보였다.


입술이 허벅지에 머무르자 그녀는 신음소리를 크게 냈다.

그녀의 반쯤 벌어진 입에서는 "헉헉" 거리는 신음소리가 연신 났다.


꽃잎 근처를 빨자 벌써 물이 나와서인지 여자 특유의 애액 냄새가 났다.


손가락으로 꽃잎을 벌리고 자세히 관찰했다.

방은 어둡긴 하지만 조그만 등을 켜놓아서 어느 정도 그녀의 그곳을 볼 수 있었다.

털은 적은 편이었고 경험이 많아서인지 소음순이 바깥으로 조금 삐져나와 있었는데 색깔이 검은 편이었다.

손가락에 애액을 묻혀서 클리토리스를 살살 문질렀다.


그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흥분으로 미칠 듯이 소리를 질렀다.


손가락 하나를 질구에 넣고 돌려댔다.

그리고 입으로 꽃잎 전체를 빨았다.

클리토리스를 빨아대자 그녀는 이미 오르가즘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넣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난 딴청을 부리며 애무만 하자 그녀는 애가 타서 내 바지를 벗겼다.

그리고는 내 바나나를 꺼내더니 입으로 물었다.


그녀의 입에 내 물건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입속 따뜻한 기운이 물건에 전해왔다.

그녀의 입은 내 물건을 포근히 감싸더니 아이스크림 먹듯이 부드럽게 빨아댔다.


입속 깊숙이 넣었다 빼고는 혈로 살살 돌리며 귀두를 빨아주었다.

내 방울까지 빨아주는 데 미칠 지경이었다.

23살의 나이에 걸맞게 난 정력이 넘쳐났고 내 바나나는 엄청나게 커져서 터질 지경이었다.


난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

그녀의 질에 맞추고는 살짝 밀었다.


조금씩 그녀의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아"하고 긴 신음을 뱉었다.


빨리 피스톤 운동을 하지 않고 얕게 그녀의 입구를 공략했다.

그리고는 가끔 아주 깊숙이 밀어 넣고 잠시 멈추었다.


그녀는 경험이 많고 노련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만족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난 그녀의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깊숙하게 쑤셨다.

한참을 그러다가 뒤로 하는 체위를 시도했다.

그녀는 그 체위에 흥분을 많이 하는 표정이었다.

30분 정도 하다가 그녀는 내 위에 올라탔다.


난 그녀의 유방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녀는 내 물건을 뿌리 깊숙이 집어넣고 서서히 허리를 돌려댔다.

팽팽한 내 물건은 그녀의 몸속에서 더욱 커지고 있었고 그녀는 클리토리스를 많이 마찰시키려고 몸을 밀착시키며 허리를 흔들었다.


그녀의 신음소리가 더욱더 커졌다.

나도 이제 사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허리를 잡고 위아래로 크게 흔들었다.

그녀의 신음이 거의 울부짖는 소리가 될 때쯤 난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홍조를 띠는 것을 보았다.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그녀의 질이 내 것을 꽉 조이며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몸속에서도 뜨거운 것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한참을 몸을 떨며 소리를 지르다가 내 위에 엎어졌다.

그렇게 우리의 섹스는 시작되었고 우린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거의 매일 섹스했다.


이렇게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었고 우리 둘은 서로 사랑했다.

멀리 이국에서 외로워서인지 우린 빨리 가까워졌고 평일에는 같이 수업받고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고 주말에는 같이

여행을 다니거나 놀러 다녔다.


그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교육받았던 일본이란 나라와 그녀를 통해 느낀 일본은 달랐다.


나는 그녀에게 일본어를 조금씩 배웠고 난 그녀에게 한국말을 조금씩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서툰 한국말로 "사랑해"라고 말하곤 했다.


우린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때로는 의사소통이 안 되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한자로 종이에 쓰면 그녀는 단번에 알아듣곤 했다.

같은 한자 문화권에 산다는 것이 그럴 때는 편리했다.


그녀는 내가 팔베개를 해주는 것을 좋아했고 휴일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서 서로 안고 뜨거운 사랑을 한 적도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의 중소기업체 사장이었고 집안에 작은 골프장을 만들 정도로 부자였다.


난 가난한 유학생이었지만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호주 전기통신공사 사무실을 청소하는 일이었는데 밤 11시에 가서 일하면 새벽 2시는 되어야 일이 끝나곤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받은 첫 월급으로 캥거루 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시드니 킹스크로스에 있는 상점에서 샀다.

그리곤 몇 달 전부터 종류별로 모아온 반짝거리는 새 동전과 은행에서 바꿔온 빳빳한 새 지폐를 지갑에 넣었다.

그리고 내 사진과 극장표 2장, 그녀를 위해 내가 지은 사랑의 시 한 편을 적은 카드를 지갑에 같이 넣어서 포장했다.


그날 저녁 난 그녀의 선물로 감동한 그녀의 눈물을 보았다.

난 그녀에게 말했다.

지갑 속의 동전처럼 늘 새로운 마음으로 반짝거리는 사랑을 하자고.


우린 지갑 속의 극장표로 영화를 보고 서큘러키 근처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렇게 그녀와의 사랑은 1년이 넘게 지속되었지만,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중간에 공부를 포기하고 일본으로 돌아갔고 그녀와의 사랑은 끝이 났다.


그녀와 헤어진 후에도 그녀에게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에 카드가 왔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결혼한 후에 한국에 그녀가 온 적이 있었다.


그녀와 난 서울에서 만났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자 너무 기뻤다.

같이 갈비를 먹고 우린 백화점과 남대문에 가서 쇼핑도 했다.


그녀는 아직도 미혼이다.

지금은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세월의 흐름은 너무도 빠른 것 같다.

그러나 그때 사랑의 추억은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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