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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야설)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 단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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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일상이 매일매일 지나간다. 출근하고, 회의하고, 업무 보고, 미팅하고, 점심을 먹고, 또 일하고, 퇴근하고..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출근하고...


결혼은 어쩌면. 날 포기한 선택 일수도 있었다.

첫사랑 지숙이와의 인연은 2006년 1월에 군 생활 첫 정기휴가 때 날아가 버렸고

그 후 난 지숙이와의 불같았던 사랑을 꿈꾸며 여러 여자를 전전했다.


미연이와의 괴이했던 연애도 어물쩍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난 까마득한 대학 후배를 알게 되어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내가 지금의 와이프를 선택한 건. 진짜 "선택"이었다. 일단은 맏며느리 감에 살림도 잘하게 생겼고, 무엇보다 물정 모르는 어린 아가씨였다는 점.

또. 종교문제도 없는 무교라는 점과 함께...아내의 집안도 넉넉하고 큰 흠이 없는 집이란 점이 내겐 중요했다.

나이 때문에 반대하던 결혼을 와이프를 서울로 데려와 같이 지낸 지 6개월 만에 임신시켜 처가에 임신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고

급하게 난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그저 그렇게 바쁜 직장인이자, 남편이자, 아빠로 지낸 2년이 좀 지났을 어느 봄.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고 늘 하는 미팅, 늘 하는 작업에 신물이 날 때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놈이 내게 아줌마 한 명을 소개해줬다.

회사 근처가 근무처라는 점도 나름 괜찮았고, 무엇보다 노래를 즐기는 타입이었다.

퇴근 무렵에 만나 엔제리너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하다 저녁을 먹고 노래방으로 가서 노래를 부르거나 같이 영화를 보는 게 다였다.

처음 두어 달은 그렇게 소소하게 마치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처럼 지냈는데 여름이 다 되어 가는 6월의 시작 즈음….

일을 정리하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쪽지가 와있었다. 메신저의 쪽지를 누르니.


"오늘 뭐 해? 술 한잔 사줘"


갑자기 웬 술? 민정이는 나보다 3살 어린 아줌마였지만 가끔은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지루한 말도 곧잘 하는 천상 직장인 아줌마였다.

웹 서비스 기획자였던 민정이는 결혼 8년 차가 넘었지만, 아이가 없었고, 남편은 공기업에서 도로 통제 시스템을 관장하는 프로그래머이다 보니 늘 늦고,

심지어 일주일에 2~3일 얼굴 볼 때도 많았다.

하지만 민정이나, 나나, 술을 좋아하지 않던 관계로 우린 맨정신으로 만나 영화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가끔은 피시방에서 게임도 하고, 그

렇게 다소 풋풋하게 만나왔던 것인데. 그날은 다소 뭔가 틀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난 쪽지를 보냈다.


"더운데 무슨 술?"


다시 쪽지가 온다


"걍. 사줘"


투덜거리며 난 회사 문을 나섰다. 비록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난 피처폰 사용자..

왜? 피처폰은 기능을 찾아 들어가는 게 까다롭고 세부 메뉴를 찾아 들어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민정이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면 그건 바로 스팸 처리되어 스팸 문자함으로 가고, 그렇게 온 스팸 문자는 수신기록에 남질 않았다,

난 매시간 스팸 메시지 함을 확인하는 번거로움이 있어도 이러한 복잡한 기능을 선호했다.

왜? 간단해 들킬 염려가 적으니까.


게다가. 민정이의 전화번호 이름은 바로 "음란 스팸 문자임"...

따라서 난 민정이에게도 킬킬거리면서 문자쓰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문자를 보낼 땐 앞에 별표기 하고 후끈한 하루! 오빠. 우리 함께 즐겨보아요~"이렇게 쓰고. 뒤에 끝나고 "재미있게 놀까요? 퇴근할 때 연락해주세요~ 라고 써"


민정이도 킬킬거리면서 내 방법을 공유했고 덕분에 민정이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피처폰 이용자가 되었다.

그날도 밖에 나오자마자 난 스팸 문자함을 열어봤다.


"젊고 탱탱한 영계가 한가득! 퇴근하셨어요? 전화해 주세요~"


난 얼른 전화를 했다.


"여~ 웬일이야 갑자기? 술이 당기나?"

"아자씨~ 어디야?"

"어 방금 나왔어."

"그럼 우리 가산동으로 가자"

"가산동은 왜?"

"거기에 내가 지나가다가 봐둔 사케바가 있어"

"사케바는. 우리같이 술 안 좋아하는 사람이 뭔 아직 해도 안 졌는데 술이야?"

"...아자씨..가끔은 이 동생 부탁도 좀 들어주지? 뽀뽀해줄게. 까르르"


어이구. 난 가산동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가산디지털단지 역 앞에서 날 기다리던 민정이가 자신의 흰색 모닝에 날 태우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뭐야~갑자기 웬 술?"

"응. 오늘 좀 마시고 싶네."

"..그러지 말고 우리 철산 가지"

"철산?"

"응 철산에 가면 내가 자주 가는 일본 요리집이 있어"

"어딘데?"

"응. 박가네라고..시티은행 주변이야"

"일단 가면서 길을 알려줘요."


철산에 있는 박가네는 그다지 번드르르한 집은 아니었지만 내가 2000년 초반부터 쭉 다닌 음식점이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주문을 하면 돈가스도 바로 내오곤 하지만, 내가 처음 박가네에 갔을 땐 주문을 하면 고기부터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돈가스가 나오곤 했던, 꽤 맛으로 알려진 집이다.


박가네로 들어서자 일단 난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직 초저녁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다.

다락처럼 낮은 천장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던 민정이가 툴툴거렸다.


"아. 뭐야..여기 ..맛은 있어?"

"먹어봐. 여기요! 참치 초밥 특이랑 음...뭐 마실 거야?"

"사케"

"사케 한 병이랑 콜라 하나 주시고요"

"...아자씨! 여기까지 와서 뭔 콜라! 그냥 사케로만 주세요!"


...얼래?


"아. 그럼. 두부전골도 하나 주세요!"


주문을 하고 나니 민정이가 날 보면서 이죽거린다.


"거 좀..아리따운 동생이 술 한잔 먹고 싶다고 하면 같이 먹어줄 생각을 해야지. 쳇"

"...거참..나 술 먹음 얼굴이 벌게진다니깐.."

"그건 나도 마찬가지 거든?"


손가락으로 컵의 물을 튕기는 민정이


"어이구..그나저나..진짜..무슨 일이야?"

"...아니..뭐 별일은 아니고..진짜 그냥 술이 땡겼어. 히히"


맑게 웃는 민정이 딱히 예쁜 얼굴도, 섹시한 얼굴도 아니다. 그냥, 웃을 때 눈웃음이 지숙이와 닮은 게 날 가장 끌어당긴 요인 정도?


사케가 나오고 초밥이 나오자 민정이가 다소곳하게 술을 따라 준다.


"자자...받으시어요. 홍홍홍"


....얼래?


"어이. 왜 귀여운 척은 해? 이러다 정든다~"

"어머~어머~우리 사이가 그럼 뭐 걍 친구 사인가? 어머어머~ 아자씨~ 유부끼리 이러고 놀면요~ 다 뭐가 있는 거랍디다~히히히"


넉살 좋은 귀여운 웃음.

사케 한 잔을 들이켜는데..끄으.... 목줄기를 타고 찌릿함이 넘어가더니 이내 속이 뜨거워진다.


"아으..역시 난 술이 안 받아.."

"...얼씨구..아자씨..음흉해..이거 나 먹이고 확, 업어가려고 하는 거 아냐?"

"얼래? 이봐 이봐..술 먹자고 한 건 내가 아니라 아줌마 아니든가?"

"히히. 그렇네. 히히"


술잔은 나보다 민정이가 몇 배나 많이 들었다 놨고 초밥의 반 이상이 사라지고 국물을 먹기 위해 시킨 두부전골의 반절 정도가 사라질 즈음엔

민정이도, 나도, 얼굴이 벌게져서 슬쩍 뒤로 자세가 기울어진 상태로 배를 두들기고 있었다.


"어우..여기 음식 좋은데?"

"그치? 국물도 자극적이지 않고..초밥 어땠어?"

"...뒷골이 확 땡기긴 하는데..아우..저렇게 초밥이 튼실한 건, 진짜 오랜만인 것 같아"

"여기가 초밥 하나는 프로답진 못해도 뭐랄까? 아주 먹는 맛이 난달까?"

"응응..그런데...아찌"

"어?"

"...아찌. 결혼생활이 행복해?"


어라? 웬 진지 모드?


"...뭐..그건...어떻게 대하냐..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다른 문제지...뭐"

"...아찌는 어떤데?"

"나? 난..음...그저..내 신조는 하나지..적어도 내가 책임질 사람 마음 아픈 일은 안 만든다.

설령...그런 일을 하더라도 철저히 행동해서 최소한 들키지 않게 한다. 들킬 수 있는 여지가 있음, 아예 하질 말아라..정도?"

"흠..철저한 게 바람둥이 같은걸?"

"..바람둥이 기질이 없다곤 못하겠는데, 바람을 필 바엔 제대로 피우고...

들킬 가능성이 눈곱, 아니 몇만분의 일이라도 있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아라..그게 내 생각이야"


"그럼 자신감이 있고..기회가 된다면 바람피운단 소리?"

"...대게..그런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말야..조건이 맞아야 하지..."

"조건?"

"..음..내가 아무리 철저하게 한다 해도..내 상대가 철저하지 못하면. 그쪽에서 걸리건, 혹은 내 쪽에서 걸리건, 어디선가 걸리겠지.

그래서 상대도 철저한 사람이어야 하지. 결론은 그런 사람 만나기..겁나 어렵다는 것. 그래서 뭐 실상은 그다지 실적 없는 공염불. 하하하!"

"....그러면..상대가 철저하면 바람피운단 말이잖아"

"아. 뭐그렇지만 그게 쉽냐 그거지 ...킬킬"

"...흠...복잡하긴 한데, 이해는 가"

"이해? "

"..음...아찌. 내가 아찌 만나서 노닥거리고, 차 마시고, 영화 보고, 노래 부르고...이런 것도 어찌 보면 바람 아니던가?"

"흠..우리가 최소한 스킨쉽이나 뽀뽀는 안 했으니 꽤 건전하긴 한데, 남편이나 내 와이프 입장에선 바람이겠지?"

"응응..그래 ...그런데 말야...만약에 아찌 와이프가 바람을 피운다면 기분이 어떻겠어?"


갑자기 술이 깨는 기분이다.


"무슨 말이야?"

"..........휴.....나 술 한잔"


술이 떨어졌다. 난 다시 사케 한 병을 시켰고, 술이 오자마자 내 손에서 술을 낚아챈 민정이가 잔 가득 술을 따라 원샷을 했다.


"..크...왜. 우리 뚱땡이 아찌 있잖아."


민정이는 늘 자기 남편을 뚱땡이라 불렀다.


"...그 자식이..글쎄..히히..연애를 하더라구"

응? "


...아 뭐. 나도 아는 앤데. 학교 후배...아..솔직히 내가 울 뚱땡이 핸드폰은 안 보거든..뚱땡이 역시 마찬가지고..그래도 가끔은 보고 싶을 때가 있어..

특히..날 열받게하믄. 흐흐"


또 술을 자작한다. 거참..


난 초밥을 들어 입에 넣어줬다.


"때엥큐~음냐..아우 머리야..크으...아 그놈의 와사비..쎄네..으..암턴..뚱땡이 아이폰을 만진 건 사실..그냥 어플이나 하나 켜서 놀아볼까였어..

그런데. 이놈 자식이 락을 걸어놨잖아. 그래서 갑자기 화가나 데? 아 뭐. 나도 잠가놨지만.

짜증 난 상태에서 뚱땡이 아이폰이 잠겨있으니 그것도 맘에 안 드는 거야...

해서, 그놈이 자주 쓰는 비번을 총동원했지. 헤헤..울 뚱땡이...그다지 잔재주를 잘 안 부리는 게 잘못이었어."


또 자작..


"..킁...아우. 록 푸는데 진짜 딱 두 번이면 되더라고. 키키..그런데...이자슥. 내가 모르는 메일 계정이 있더라고..구글에...

메일 들어가니깐. 딱...혜지, 혜지, 혜지..메일이 수십 통은 있는 거야. 보낸 메일함도, 받은 메일함도, 지운 메일함도 온통 혜지, 혜지...."


갑자기 술잔을 거머쥐더니 후 하고 숨을 크게 내쉰다.


"........있잖아...남편 메일에, 여자가 자기 가슴골을 드러낸 사진을 보내곤 만지고 싶지? 라고 써놓음. 그걸 본 사람 마음은 어떨 거 같아?"


아 이런. 순식간에 껄끄러워진다.


"....게다가...이 새끼가..하하..그 볼록한 배를 있는 힘껏 힘을 주곤, 욕실에서 셀카를 찍어서 보냈지 뭐야. 하하하..젠장.."


또다시 자작. 연거푸 두잔.


".........푸..............어으...아찌! 그런데...나..그거 보고 바로 걍 내려놨다? 왜? 왜일 거 같아?"

"글쎄.."

"..생각해보니. 나도 아찌랑 커피 마시고, 노래 부르고 놀고, 뭐 그랬잖아. 같이 키스하고, 잠자고, 그런 거 없었어도 따지고 보면

나도 뭐 바람을 피운 거면 바람을 피운 거니깐"


흠. 헤어지자는 건가?


"........첨엔 아찌랑 연락을 끊을까..그리곤 나도 내 생활로 돌아갈까..뚱보 용서하고 잘 지내볼까 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 뚱땡이 새끼가 엊그제 출장을 간다는 거야.."


두 잔 연거푸 원샷.


"..아으..쓰려..거참..해서 난 늘 그렇듯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 .씨발. 졸라 궁금한 거야. 진짜 이 인간 출장 갔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도 못자겠더라구.

해서..뚱땡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뭐라 하는지 알아?"


..설마.. 


"...씨발 .대구 출장을 갔다는 거야. 내 기대완 달리 진짜 출장을 갔더라고..하하..그래서 걍. 에라 그러면 그렇지..했는데....

씨발...갑자기 친구가 GIS 관련 소개페이지를 만든다고 혹시 GIS 관련 프로그래밍 툴 캡처한 이미지 같은 게 있냐 그러더라?

해서 우리 랑이꺼 놋북 켜서 내가 대충 하나 띄워서 캡처함 되지? 그랬더니 좀 부탁한다더라?

해서 뚱땡이 놋북을 켰지...그런데...씨바. 이 새끼 놋북에 암호가 걸린 겨! 해서 또 뭐 1분도 안 걸려서 비번 넣고 들어갔지. 캭캭.."


한잔..


"..푸........ 어으..짠하다..뭐 일단 랑이꺼 프로그램을 열어서 대충 파일을 열어보려 했는데..도통 이게 뭐가 뭔지 알아야지..

해서 가장 단순한 거, 이전 파일을 불러와서 대충 줌 아웃을 하고 캡처했지. 혹 신랑이 중요하게 만든 프로그램이면 좀 그렇잖아...

해서 좀 사이즈를 줄여서 보냈더니 친구가 그 정도면 된다고 하는 거야..해서 딱 끄려고 했는데 갑자기 궁금해지더라?

해서 D 드라이브에 들어갔지. 뭐. 야동밖에없더만. 첨엔 그런 줄 알았어..헌데. 야동 하나를 열어보니까. 꽤 재미난 거야...좀 웃기기도 했고..

생긴 건 씨바. 분명 20대 중후반인 여자애가 교복 입고 막 "야메떼"그러더라구. ㅋㅋ

그거 좀 보다가 다른 것도 보려고 다음 폴더에 들어갔는데. 동영상이랑 같이 웬 파일이 같이 있더라고..이미지인가 해서 열어봤는데. 하하.."


또다시 자작.


"....뚱땡이랑 그년이 홀딱 벗고 욕실에서 사진을 찍었더라고"


아아..이런...


"...하하...젠장..아찌..그걸 보고 나서 내가 어떤 생각이 들었을 거 같아?"


아. 뭐라고 해줘야 하지?


"....쩝 뭐 그래서 오늘 하루는 겁나 우울했어. 그런데..아찌가 생각나더라. 그래서 술 한잔 사달라 한 거야."


씨익 웃고는 술을 따라 먹는 민정이. 

거참.


"조금만 먹어..취했다"

"...거참. 어차피 대리 부를 건데 뭐..킬킬..아. 모닝으로 대리 부르려니까 쪽팔리긴 한다. ㅋㅋ"


...쯥. 저렇게 웃지만..왠지 그늘이 진 것 같아서 안쓰럽다.


"...아찌"

"어?"

"우리 노래방 갈까?"

"어. 그러자. 술도 깰 겸.."


자리에서 일어나 구두를 신던 민정이가 비틀했다. 얼른 난 민정이를 부축했고 내 팔을 잡은 민정이는 손을 놓지 않은 채 날따라 노래방까지 갔다.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민정이는 의자에 털퍼덕 쓰러지더니 손짓으로 날 부른다.


"응? 왜? 토하고 싶어?"

"아니...저기. 콜라 좀.."


속이 안 좋은가? 난 얼른 카운터로 가서 콜라를 사왔다. 콜라를 들이켜던 민정이가 날 바라본다.


"마실래?"


.....얼래? 난 민정이 손에 쥐어진 콜라를 봤다. 슬쩍 보니 민정이는 술기운이 더 뻗쳐 올랐는지 눈도 충혈되어 있다.


"왜? 내 입이 닿아서 싫어?"

"아니"

"칫. 그럼?"


갑자기 민정이가 내 앞으로 오더니 내 옆에 앉는다.


"자. 그럼 내가 먹여줄게."


얼래? 콜라를 들어, 내 입에 들이민다. 엉겁결에 난 민정이의 손을 피했고 그 바람에 콜라가 조금 쏟아졌다.


"아응..뭐야~"


아무렇지 않은 듯 내 바지에 묻은 콜라를 손으로 털어내는 민정이 ...

순간 난 화끈하고 말았다. 내 지퍼 어름을 손으로 탁탁 터는 손길에 나도 모르게 움찔한 것.


"어머. 뭐야?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어머. 내가 다 부끄러워지네."


킬킬거리는 민정이 ...하...뭐야..이러다 오늘 일 치르겠네.. 노래를 시작했다.

첫 곡은 늘 그렇듯. 시작은 난..


광석이 형에게 꽂힌 건 이미 고삐리 때인 91년. 그 후 2012년인 지금까지 난 김광석 노래만 부른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있는 너의 향기.."


제법 노래를 부른다는 얘기도 듣고 있고, 무엇보다 노래를 부르면 대부분 여자들이 꽤 나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론..

노래는 반드시 내가 스킬 유지를 해야 할 덕목(?) 정도로 여기고 갈고닦는데 소홀하지 않았었다.

그날도 역시나 난 분위기를 잡는 데 성공했다. 턱을 괴고 노래를 듣는 민정이. 노래가 끝나자 박수..


"역시..아우..은근 눈물이 나려 하네."


배시시 웃는 얼굴.. 저 눈웃음. 지숙이를 닮은 눈웃음. 아..씨발..좀 땡기네....


민정이가 앞에 나선다.


"가물거리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오오. 이선희! 사실 민정이도 그다지 최신가요랑은 친하지 않은, 나같은 고루한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난 김광석이나 여행스케치 같은 예전 노래를 공유하면서 더욱 친해졌었고.


노래를 부르며 눈을 감은 채 슬며시 고개를 옆으로 조금 기울고 애잔한 표정을 짓는 민정이 ...예쁘네.


노래를 끝내고 내 옆으로 앉는다.


"..나 노래 잘해?"

"...음..노랠 잘하는 건 아니고 노랠 기분 좋게 부르네!"

"뭐야~"

"...아니. 뭐. 예쁘게 부른다고"

"호호. 내 목소리가 좀 예쁘지. 깔깔"


밝게 웃는 민정이 밝게 웃는 웃음 뒤에 눈물이 보이는듯하다. 노래를 하나 더 골랐다.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애니메이션, 초속 5cm의 주제가. 고베 지진으로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만든 노래. 구슬픈 곡조..

난 일본어로 나오는 노래를 한국어로 번역된 가사로 불렀다 ...

사실 번역된 가사는 원곡에 맞춰 부르기에 그다지 매끄럽진 않지만..나름 연습을 해서 꽤 그럴싸하게 부를 수 있었다 ...

한데... 마지막 소절이 끝나갈 무렵.


"흑흑..."


젠장. 민정이가 탁자에 쓰러져 울고있다.


"...우리 더 만나면 안 될 것 같아"


탁자에 쓰러져 우는 민정이를 내가 보듬지만 않았더라면."


...이러고 싶어서 술을 먹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꼭, 그냥 술만 먹자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어"


내 옆에 등을 돌리고 벽을 보면서 그렇게 벗은 어깨를 내게 보이며 나지막하게 말하는 민정이를 노래방에서 내가 보듬지만 않았다면.

우린..그렇게 껄끄러운 사이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어쩌면 나도 이걸 바랬는지도 모르고. 또..당신도 나랑 뭔가 통하는 게 있었으니 계속 날 만난 것이기도 할 테니까..

몰라. 어쩌면..뭐...어떻게든 우리 사이가 진전되건, 어물쩍 끝날 수 있기도 하겠지만 복잡하면 복잡한 데로 정리되겠지. 몰라.."


탁자에 쓰러져 우는 민정이를 달랜답시고 옆에 앉아 어깨에 손을 올리지만 않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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